"처음부터 너를 죽이기 위해서 태어난 내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너에게 집착하는 것 이외에는!!"
우에에에~대마왕님~~~!!!! T.T
여성향 번뇌 토크를 감당하실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동인신과 nyx님이 보우하사 헷챠라 본편 열세 권과 X 두 권과 G 네 권을 완독했습니다. 아아, 살아 있으면 이렇게 좋은 일이 많다니까요...!! (부르르) 정말로 감사합니다 nyx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과 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보내드립니다. (예? 필요 없으시다구요? ;;;)
DB계 최대의 오오테 중 하나로 손꼽히는,
3배 계왕권 신기의 호시 히카루(星ヒカル) 상을 주축으로 하여 다치바나 히코토(たちばなひこと), 유메니 라포(夢仁らぽ) 등으로 구성된 다인(多人) 서클
사념 시스터즈(邪シスタ-ズ)가 사랑과 모에로 뭉쳐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려 열두 권(준비호까지 합치면 열세 권)을 발행한 헷챠라(へっちゃら) 시리즈는, DB를 사랑하고 여성향에 어느 정도의 면역성만 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다 즐거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개그물입니다. 물론 끈질-긴 피공 번뇌가 베이스로 깔려 있는 데다, 여성향 수위가 꽤 높은 축에 드는 중편이 꼭꼭 하나씩 실려 있긴 합니다만,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결정적인 찰나에 어떻게든 훼방이 들어와 브레이크가 걸려 버리므로(......) 안심하셔도 무방합니다. (오죽하면 직전 스톱의 미학寸止めの美學이란 소릴 다 듣겠습니까;) 본편의 외전 격인 헷챠라 X는 일명 '대마왕님의 소원성취 편'(;), 완전 여성향의 18금이고, 역시 설정이 연동되는 헷챠라 G는 개그 온리 노선을 달리는 히카루 상의 개인지죠.
이 헷챠라 시리즈의 현지에서의 인지도는 뭐, 말해봤자 입만 아픕니다. 어쩌다 옥션에 나왔다 할라치면 눈에 불을 켠 팬들이 목숨 걸고 덤벼드는 광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덕분에 총집본 발행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던 S에게 nyx님의 구원의 손길이 내려졌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습니까! >_<
...그리하여.
열 아홉 권을 순식간에 읽어치우고 그만 죽었습니다. 대, 대마왕님―!!! T.T
각설하고.
좀 이야기를 삼천포로 뽑아서, S는 영화
「나인 하프 위크(Nine 1/2 Weeks)」를 무척 좋아합니다. 작품성이나 재미와는 하등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발로이므로 도저히 누구 옆구리 찌르면서 같이 보자고 할 수는 없지만요.
여기서 YES24의 줄거리 소개를 한 번 훔쳐봅시다.
젊고 낭만적인 이혼녀 엘리자베스는 화랑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귀공자 타입의 부유한 주식 중개인 존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난 순간부터 최면에 걸린 듯한 착각을 느끼는 엘리자베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존의 요구가 정도를 벗어나게 되자 자신의 사랑을 돌이켜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는 사랑을 마치 게임의 일부분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했다. 엘리자베스에게 눈을 가린 채 사랑의 행위를 하게 하고 기묘한 방법으로 그녀를 성의 노예로 전락시키려 했다. 엘리자베스는 존에 대한 강한 회의와 실망을 느끼게 되어, 50을 세기 전에 되돌아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존을 뒤로하고 왜곡된 사랑의 게임에서 벗어나 수많은 인파 속으로 걸어나간다.
거짓말 마라 어이 -_-;;
속지 마십시오. 저얼대로 저런 이야기 아닙니다.
S가 「나인 하프 위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이 영화가 그야말로
「유혹의 기술」의 체현이기 때문입니다. 저 남자 존은 의심할 여지없는 아이디얼 러버(Ideal Lover)의 전형이고, 그가 엘리자베스를 유혹하는 과정은 로버트 그린이 제시하는 유혹의 경전 24조의 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책에서 읽은 내용이 딱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게 이거 보통 쾌감이 아닙니다. Oh, my, God. (
재니스 風)
줄거리 소개에서는 성의 노예가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지만, 저 예의
시각차단플레이는 실제로 영화를 보면 하나의 포석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터부를 깨뜨리고 화끈하게 놀아보고 싶은 욕망을 무의식 중에 품고 있지만, 걷지도 못하는 애한테 뛰기부터 가르치면 안 되듯이 처음부터 막 나가면 대부분의 소시민은 질겁을 해서 도망치기 마련입니다. 존은 우선, 비교적 가벼운 일탈 행위를 제시하여 엘리자베스가 유혹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부터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결국 받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일선을 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죠. 그 순간에 존은 확신했을 겁니다. 밀어붙이면 넘어올 거라고.
그리고는? 기습적으로 거대한 빨간 장미 다발의 공세를 펼치는가 하면, 침대에서 느긋하게 뒹굴고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 주고(11조 '사소한 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라'), 엘리자베스를 관람차 꼭대기에 올려두고 혼자 유유히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약속을 깨뜨렸다며 그녀를 일방적으로 마구 비난하고(20조 '적절한 고통으로 상대의 마음을 장악하라'), 그녀가 미처 상상도 못했던 곳으로 데려가고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끝없이 보여주고(9조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들라'), 남장을 하고 레스토랑으로 오도록 유도하거나 좀도둑질을 조장하는 등(18조 '터부를 깨뜨리는 자유를 맛보게 하라') 온갖 가지 전술을 일파만파로 화려하게 구사하며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버립니다.
엘리자베스는 존의 공세 앞에 정말로 정신을 차리질 못합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셰이빙 크림으로 이를 닦지 않나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질 않나, 영화 속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그림 속의 여인처럼 그녀도 꿈에 푹 빠져 있습니다(14조 ‘완벽한 환상으로 현실을 잊게 만들라’).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전 남편이 상징하는 평범하고 무난한 세계에서 고립되어 더욱 존에게만 의존하게 됩니다(15조 ‘상대를 고립시켜 당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라’). 예, 완벽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존이 막판에 엘리자베스를 놓친 건 결코 그녀가 '회의와 실망을 느껴서'가 아닙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과신한 존이 그녀가 견딜 수 있는 한도 이상의 고통을 가하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해도 S는, 엘리자베스가 진짜로 존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가끔 회의가 듭니다.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이제 와서 벗어나기에는, 그녀는 그에게 감정적으로 너무나 종속되어 있으니까요. (「나인 하프 위크 2」 따위는 잊어버립시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나인 하프 위크」가 이렇게 아이디얼 러버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면, 헷챠라 시리즈의 손오공은 말 그대로 치고 빠지기의 달인 코케트의 정수입니다. - 본디 코케트 속성은 나쁜 남자의 기본이긴 합니다만 - 그냥 가벼운 개그 시리즈로만 알고 있어서 죄송했습니다. (넙죽)
"안 돼!! 그만해! 잠깐, 기다려!" 를 입에 달고 피콜로 씨의 어택에서 죽자 사자 도망다니나 싶더니 갑작스럽게 자기 쪽에서 웃옷 벗어 던지고 저돌적으로 유혹합니다(나름대로는 대마왕님 정신 좀 챙기라고 한 연극이었지만요;). 그러더니 바로 다음 권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파랗게 질려서 열심히 꽁지말고 줄행랑치고, 에라이 모르겠다 한 번 해 버리고 말자(....)고 옷을 훌렁훌렁 벗어제끼더니만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 피콜로 씨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질겁을 해서 문 워크로 슬금슬금 물러나고, 대마왕님을 폭발 일보 직전으로 몰아가다가 느닷없이 허걱스러운 화끈한 고백으로 사람을 푸슬푸슬 녹여놓더니 기껏 C까지 가기로 합의해 놓고는 홀라당 까먹어 버립니다. 물러나면 당기고 덤벼들면 밀쳐내고, 잡힐 만하면 내빼고 지쳐서 나가떨어질 법하면 토닥토닥나데나데로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손안에 들어왔다 싶으면 거리를 두고 이쪽이 뒷걸음질을 치면 꽉 잡고 안 놓아줍니다. 똥개 훈련시키냐 인간아!!!!!
.......고의라고는 전혀 없는 100% 천연 내추럴 코케트라는 게 더욱 슬픕니다. 어쩌다 이런 거한테 걸리셨어요, 피콜로 씨;;;
저 코케트 근성에 10년 이상을 쥐락 펴락 놀아난 것도 대마왕님으로서는 억울해 죽을 판인데, 헷챠라 시리즈를 통해 일관적으로 사용되는 손가 놈의 기본 전술은 무려 20조 '적절한 고통으로 상대의 마음을 장악하라'입니다. 의도적이라면 차라리 낫기나 하지 이건 아무런 자각도 없습니다. 아이구 사람 살려;
대개 상대를 유혹하려면 늘 친절하게 대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한 마디로 잘못되었다. 처음에는 친절한 태도가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차츰 식상해지고 상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약점을 잡힐 수 있다. 따라서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간간이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상대만을 생각하는 척 강렬한 관심을 기울이다가, 이따금씩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며 무관심한 척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죄책감과 불안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잠시 만나지 말자고 제안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상대는 공허감에 빠져 심적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친절한 태도로 접근하면 상대는 행복한 마음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상대에게 약한 마음을 갖게 만들수록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에로틱한 감정을 한껏 고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 좋다. …(중략)… 상대를 유혹할 때는 늘 즐거움만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절정에 너무 빨리 이르면 그만큼 식상해지기 쉽다. 즐거움에는 어느 정도 고통이 따라야만 더욱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사랑의 감정이 더욱 강렬해지고, 먼 여행을 다녀온 뒤에 집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듯이 유혹의 경우도 그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를 유혹할 때는 슬픔과 절망과 고뇌의 순간을 만들어내어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킨 뒤에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를 화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화를 낸다는 것은 이미 유혹에 걸려들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너무 까다롭게 굴어 상대가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지루한 사람을 피하지, 까다롭지만 매력이 있는 사람은 결코 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고, 긴장을 조성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 유혹의 높낮이를 조정해 상대의 마지막 남은 의지마저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 로버트 그린, 「유혹의 기술」 中
준비호는 일단 빼놓더라도 장장 열두 권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 동안 오공이가 피콜로 씨에게서 얼마나 잘 도망다녔는지는 이미 위에서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했습니다. 이리 빼고 저리 빼는 스킬의 완벽함이야 더 이상 논해봤자 입만 아프죠. (키스 한 번 해 보는데 열한 권이 걸렸습니다;) 한껏 무방비한 모습으로 - 옷 벗어 던지기는 기본 - 정욕을 실컷 부채질했다가 건드리기만 하면 제가 무슨 숫처녀라고 몸을 사리면서 놓으라고 발악발악을 하고, 남은 심각한데 있는 대로 보케를 떨며 무적의 아방 철벽으로 모든 어택을 반사하질 않나, 심지어는 대마왕님의 들끓는 고뇌를 '쓸데없는 일'이라 한 마디로 일도양단하여 피콜로 씨의 스트레스를 성층권까지 키우고 열 받게 하고 울화가 치밀어 미치고 펄쩍 뛰도록 만듭니다. 사람 하나 능히 잡겠습니다;;
이제 피콜로 씨의 인내심은 한계치에 달했습니다. 12권에서 피콜로 씨는 널 죽이든 내가 죽든 둘 중의 하나라며 손가 놈에게 덤벼드는데, 맙소사. 이 인간, 그걸 일일이 다 맞아줍니다; 그러더니만 기가 막히고 제풀에 질려서 더 이상 패지도 못하는 피콜로 씨에게 "처음부터 싫지 않았어" 라는 어마어마한 폭탄 발언을 날려 순식간에 승기를 나꿔챕니다(23조 '최후의 일격을 가하라'). 결과는? 피콜로 씨의 완벽한 패배. 고의로 해도 이렇게는 안 됩니다. 이 천연 코케트 같으니;
12권에서야 겨우 B까지 돌입했나 싶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브레이크를 거는' 본편의 규칙이 여기라고 어디 갈까, 아니나다를까 반이가 타이밍 좋게 등장함으로써 도중에 어정쩡하게 끝나버립니다. (애한테 B를 목격당했으니 개민망이 따로 없습니다;) 보통은 오늘 다 못하면 내일 나머지를 잇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순히 내주면 어디 얼티밋 나쁜 남자 손오공이겠습니까;
.....합의 봤다는 사실마저 꼬박 한 달을 새시까맣게 잊어 드십니다.
피콜로 씨가 좀 남으라고 신호를 보내도 눈치는커녕 코치도 없이 밥 먹으러 가야 한다고 난리를 떠는 이놈을 누가 말립니까. 그 쪽팔리는 짓을 여지껏 트레이닝(무슨;)으로 믿고 있는 반이가 찔러주지 않았으면 한 달 내내 바람맞혔다는 것도 기억 못했을 겁니다. 남은 1개월을 애먼 넓적다리만 송곳으로 쑤셔가며 참았는데(안 쑤셨어) 머쓱한 얼굴로 "미안 미안. 내가 깜박 잊어먹었지 뭐야" 라고 하면 누구든 눈이 뒤집힙니다. 암은요.
20조 전술의 가장 큰 난점은 상대방이 절망과 질투와 수치심으로 인해 결국 머리가 돌아버리면 제 몸도 남아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밀고 당기기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는 7권에서부터 피콜로 씨는 이 남자를 패고 후려치고 목을 조르고 하여튼 한도 끝도 없이 폭행을 가해 왔습니다. 물론 때려서 마음대로 될 것 같으면 이 고생은 안 하지요. 그예 헷챠라 X에서는 거의 강×하다시피 범하는 폭거를 저질러 버립니다. (대, 대마왕님이....;;;;; [창백])
확실히 저런 놈들은 귀에 대고 백날 소리 질러 봤자 못 알아먹으니 몸으로 알게 해 주는 게 제일 빠르긴 합니다만; 아아, 무적의 보케로 멀쩡한 순정남의 인성(人性)을 아주 완벽히도 조졌습니다. 훌륭합니다. 과연 우주 최강의 나쁜 남자.
연애질에서는 먼저 반하는 놈이 지는 거고 죄인이라 하는데, S는 거기에 한 마디 더 추가하겠습니다.
죄책감을 먼저 느끼는 쪽도 집니다. 양심의 소리에는 굳건하게 귀를 틀어막는 뻔뻔찬란한 근성은 기본임을 숙지합시다. 인생만사 모님 말씀대로 '애비 쳐죽이고 오래비 달아맨 잡놈이 미인을 차지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콜로 씨는 이중으로 지고 들어갑니다. 먼저 반한 거야 말해봤자 목만 아프고, 본인은 뻔질나게 자신은 마족이라 부르짖으시지만 마족 치고는 양심과 죄책감이 너무나 굳건하잖아 당신. 죽도록 당하고 기절해 버린 녀석 앞에서 안면창백 수심가득하여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삽질하는데 차마 봐 줄 수가 없더군요; 그 판에 손가 놈은 잊지 않고 또 한 번 전술 23조의 결정타를 가하는 철저함으로 응수합니다. "괘... 괜찮아, 피콜로."
자고로 피해자가 울고 악 쓰고 발악하기보다 애써 웃으면서 괜찮다 고집할 때 가해자의 죄책감은 기하급수로 상승하는 법, 대마왕님 완전히 코 꿰였습니다. (아멘!) 저 사람은 자기가 어렵사리 손에 넣은 거라 믿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가 손모 씨의 수중에 들어간 겁니다. 평생 빠져나오긴 그른 덫에 제 발로 날아 들어간 꼴이지 뭡니까.
뭐, 모르는 게 약이지요.
완전히 '그런 관계'가 된 헷챠라 X 2권에서도 파란은 계속됩니다. 저기서 끝날 리가 있나요.
전술 24조 '유혹 후에 찾아올 후유증을 경계하라'. 원만하게 마무리되면 권태로울까 배려까지 해 주려나 봅니다. 어디서 맺고 끊어야 할지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숙지하고 있는 손가 놈은 특유의 쌈박한 담백함으로 여전히 대마왕님을 쥐락 펴락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골백번을 안아도 피콜로 씨로서는 뭔가가 항상 부족합니다. 약간 부족한 듯, 약간 모자란 듯, 결코 상대에게 완벽한 만족감을 주지 않는 것은 연애질의 기본. 실로 띠질의 오성장군이라 칭해 모자람이 없는 관록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여성인 아내조차 "그럼 결혼할까?" "응!" 이었으니 경험이야 어불성설이고, 그렇다고 누가 붙들어놓고 제대로 가르쳤겠습니까? (사실 제대로 가르칠 사람도 없죠) 까놓고 말해 저건 그냥 타고난 겁니다. 오 신이시여, 당신은 정녕 이 우주를 들어먹을 작정이십니까!?
그러나 밀쳐내기만 하고 빼기만 해서는 진정한 코케트가 될 수 없습니다. 무조건 고통만 주어서는 존과 엘리자베스처럼 뒷맛 더럽게 끝나 버립니다. 코케트의 기본은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배합. 상대방이 좌절의 늪에 잠겨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따스한 사랑과 구원의 손길을 아낌없이 베풀 줄도 알아야 합니다. 거 왜 탈무드에 있지 않습니까.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덩굴에 매달렸는데 위로는 커다란 뱀, 아래로는 사자, 게다가 쥐 두 마리가 달라붙어 덩굴을 마구 갉아먹고 있는 판국에 벌꿀을 핥았더니 그 맛이 천상의 달콤함이더라고. 찬 물에 한참 담갔던 손을 미지근한 물에 넣으면 물의 온도가 실제보다 훨씬 높게 느껴지듯, 심각한 심적 고통 뒤의 감로수는 대비 효과로 달기가 한이 없는 법입니다. 물론 손모 씨는 이것도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습니다;
저 민물보다도 맹맹한 녀석에게 나는 대체 무엇인가, 라는 유사 이래 늘 존재했지만 아무도 해결 못한 수라장스러운 고뇌를 새삼 껴안고 열심히 토목공사질 중이신 대마왕님에게 일단은 약 한 달간 실컷 고뇌를 맛볼 유예를 줍니다. 그리고는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가더니 토닥토닥나데나데 위로해주고, 또 열통 터져 손찌검하면 얌전히 맞아주고, 난폭하게 덤벼들면 덤벼드는 대로 받아주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순순히 열어주기까지 하는 등, 이제까지의 매정한 히트 앤드 런에서는 상상도 못할 헌신적인 애정으로 피콜로 씨를 아주 뼈까지 푹 녹여 버립니다. Oops, 마지막 남은 예기(銳氣)까지 똑 부러뜨렸습니다.
아아,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길은 저 끔찍하게 담백하고 매정하고 우주 최강으로 얼티밋으로 나쁜 남자한테 평생 꽉 잡혀 사는 것밖에 없지만 나름대로 행복해 보이니 모른 척 해 줄게요. 글쎄 모르는 게 약이라니까.
헷챠라 시리즈는 그래도 동척 씨에 비하면 좀 나을 줄 알았더니 역시 나쁜 놈은 시리어스에서나 개그에서나 가리지 않고 나쁜 놈이군요. 이젠 한숨도 아니 나옵니다.;;;
오늘의 교훈 : 나쁜 남자는 그냥 애초에 피하는 게 몸을 위한 길이다.